CHOPIN - NOCTURNES
ARTHUR RUBINSTEIN
쇼팽 스페셜리스트 루빈스타인의 “야상곡”
쇼팽의 '녹턴'은 모두 21곡으로 이루어졌다. TV BGM과 광고음악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녹턴 1번은 바로 루빈스타인(1830-1894)이 연주한 작품이다.
'육감적인 꿈과 포만한 달콤함'이 느껴지는 이 곡은 중간부 옥타브로 연주되는 D플랫장조의 선율을 유심히 들을 필요가 있다.
루빈스타인은 폴란드 태생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였으며 지휘자이기도 했다.
루빈스타인 연주의 '녹턴'은 가장 쇼팽적인 피아니즘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루빈스타인의 한국공연이 있었던 해가 1966년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역사작인 레코딩!
TRACK LIST
01. Nocturne No.1 In b Flat minor op.9 No.1
02. Nocturne No.2 In E Flat Major op.9 No.2
03. Nocturne No.3 In B Major op.9 No.3
04. Nocturne No.4 In F Major op.15 No.1
05. Nocturne No.5 In F Sharp Major op.15 No.2
06. Nocturne No.6 In g minor op.15 No.3
07. Nocturne No.7 In c Sharp minor op.27 No.1
08. Nocturne No.8 In D Flat Major op.27 No.2
09. Nocturne No.9 IN B Major op.32 No.1
10. Nocturne No.10 In A Flat Major op.32 No.2
11. Nocturne No.11 In g minor op.37 No.1
12. Nocturne No.12 In G Major op.37 No.2
13. Nocturne No.13 In c minor op.48 No.1
14. Nocturne No.14 In f Sharp minor op.48 No.2
루빈스타인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 배석호(음악평론가)
‘쇼팽의 음악은 왜곡과 과장을 배제하고 연주해야 한다. 그의 병약한 생애를 잊고, 그의 음악에만 집중하는 것이 비결이다. 즉 그가 쓴 것처럼 연주하면 충분하다. 쇼팽 음악의 실마리가 시적이라는 사실은 자유로이 인정해도 좋지만, 일반적인 그의 생애에서 단정된 감정적인 편향은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유에 의한 간결한 선을 좇아서 그것을 구성해 나가야만 한다.’ 루빈스타인이 쇼팽을 보는 시각은 이렇듯 일반적인 감정에 유리되어 있는 우리들의 상식을 깨뜨린다. 그의 약했던 육체와 슬픈 생애를 낭만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그의 음악 속으로 쉽게 결부시켰던 사람들에게 루빈스타인은 확실히 새로운 개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쇼팽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극단적으로 결백했던 그는 개인적인 것이 쓸데없이 개입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감정은 작품의 표면에서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정밀하게 계산된 숫자의, 정밀하게 계산된 작품을 앉아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그의 생활이나 음악 외적인 사상은 조금도 섞일 수 없엇고 오직 그의 음악적인 악상만 나타나 있었다. 쇼팽이 낭만파 음악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그는 어떤 의미로는 전혀 낭만파 음악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낭만파 음악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문학성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쇼팽은 전혀 그 흐름을 타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는 슈만의 문학적인 평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쇼팽이 쓴 변주곡을 보고 슈만이 ‘이 왼손은 성난 마제르트로 나타나고 있다’ 라고 말해도 쇼팽에게는 머리가 돈 독일인의 망언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쇼팽은 단지 음악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악보를 쓴 것에 지나지 않았고, 변주곡을 드라마로 간주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쇼팽의 음악은 마치 고전파와 같이 형식에 준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틀의 대부분도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는 단지 그 속에 자신의 음악을 새겨 넣었을 뿐이다. ‘녹턴’ 도 결코 그의 창시가 아니다 이 장르의 창시자는 존 필드였다. 쇼팽이 파리로 와서 당시의 대 피아니스트였던 칼크브렌너(Kalkbrenner)앞에서 연주했다. 그때 이 거장은 쇼팽에게 ‘너는 존 필드의 제자냐’고 물었고, 물론 쇼팽은 필드에게 배운 일이 없지만 그이 ‘녹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느 덧 존 필드를 닮고 있었던 것이다. 루빈스타인의 얘기로 돌아가자. ‘쇼팽의 음악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크고 풍성한 힘을 필요로 한다. 결핵을 앓고 있었던 쇼팽은 가령 건강한 리스트가 달성할 수 있었던 옥타브의 급류 그 이상의 보다 위대한 박력과 헤로이즘을 성취하고 있었다.’ 이 말에 대한 결론 역시 그 스스로 내리고 있다. ‘내가 쇼팽을 연주할때면 내가 사람들의 가슴에 직접 말하고 있음을 느낀다.’ 뉴욕 타임즈의 헤롤드 숀버그는 객관적인 청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루빈스타인의 쇼팽은 무엇을 강조한다던가 확대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늘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음반에서 듣는 루빈스타인의 ‘녹턴’들은 가장 쇼팽적인 피아니즘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더욱이 젊은 시절의 루빈스타인 연주가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이 음반을 위한 녹음 작업은 1937년과 그 보다 한해 전에 모두 이뤄진 것이다. 이 시기 루빈스타인은 50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나이를 결코 젊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95년의 생애를 살았던 사람에게 50년의 세월은 ‘생애의 한가운데’ 쯤으로 밖에 계산되지 않는다. 20세기의 100여년을 누린 이 피아니스트에 대하여 우리가 실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개가 만년 거장의 모습 뿐이다. 신동으로 출발하여 첫 레코딩을 남겼던 40이전의 루빈스타인을 본 사람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된다. 루빈스타인의 한국 공연이 있었던 해가 1966년이니 그때는 거의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다. 게다가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니 이 역사적인 쇼팽의 증인을 본 한국의 음악애호가들도 이젠 대개 쉰이 넘는 나이에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난히도 루빈스타인의 이 음반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을 어쩔수 없는 세월을 탓하기 보다 우리의 선배들이 좋아했던 음악이라니까... 하는 감정이 더 앞선다. 1928년 쇼팽의 뱃노래(Barcarolle)를 최초로 녹음한 이후, 루빈스타인의 1930년대는 콘서트와 레코딩이 왕성하게 공존하는 시대로 돌입한다. 그런 의미에서 1937년의 ‘녹턴’은 루빈스타인에게 최고의 가치가 부여된 해이다. 루빈스타인은 이 음반에 나타나있는 대로 1936년 10월과 1937년 2월 ‘녹턴’ 전곡 연주를 끝냈으며, 같은 해 런던에서 56곡이나 되는 쇼팽의 ‘마주르카’까지 녹음했다. 이 시기 루빈스타인은 미국 카네기홀에서 차이코프스키와 브람스를 뉴욕필과 협연하여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쇼팽의 녹턴은 모두 21곡. 이 음악의 형식은 존 필드가 먼저 이뤄놓은 것이다. 명백하게 이 음반에서 연주되는 작품 9의 1이나 2에서 필드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쇼팽은 다분히 일면적이었던 필드의 녹턴과 달리 외형과 내용 양면에서 보다 다양성을 갖고 이 곡들을 작곡했다. 즉 필드가 사용한 ‘녹턴’의 표현법을 보다 완벽한 녹턴의 영역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쇼팽은 필드의 창의에의한 형식을 한층 더 높여 거기에 극적인 입김과 정열, 그리고 장대함을 더했다. 필드의 소박하고 목가적인 걸과 달리, 쇼팽이 노력한 것은 단순한 것보다는 오히려 장식화이며, 보다 더한 음울이며, 너무나도 열대적이다. 그리고 이 곡들은 스팀이 통하는 따뜻한 음악실 내 익조틱한 향기로 가득 차 있으며, 시적이지도 않고 아일랜드인(존 필드의 조국)의 손으로 배양된 야생화의 신선한 냄새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가 시를 쓰듯 ‘녹턴’을 써냈지만 더 이상 시적인 감성을 가지고 그의 음악을 들으려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가 아니고 음악 그 자체이므로. 조르주 상드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뒷받침 해준다. ‘그의 음악은 찾는 것이 아니라 절로 솟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써나갈 때는 너무 고심을 했다. 그는 종일 방안에 갇혀 울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펜대를 꺾기도 했다. 한 소절을 몇번이나 고쳐썼고, 한 페이지를 쓰는데 6주간이나 걸린 적도 있다.’ (음반 북클릿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