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닫는 두 장의 음반 윤선애 《하산》, 이성호/신혜연 《꽃이 나무에게》 노래를 찾는사람들의 기지개에 이어 노래모임 새벽에서 활동하던 윤선애와 이성호의 음반이 각각 발매되었다. 노찾사에서도 활동한 윤선애의 앨범 《하산》은 작은 악기들로 편성된 사운드가 소박하게 울리는 음반이고, 이성호/신혜연의 앨범 《꽃이 나무에게》는 4계절을 모티브로 구성된 컨셉트 음반이다. 이 두 사람의 앨범이 뒤늦게 발표된 것에 대해서, 한국 노래운동 역사의 대표적인 그룹인 노찾사와의 연관성으로도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앨범에는 5곡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윤선애의 음반을 들어보자. 그녀는 ‘기억’과 ‘이별’, ‘떠남’을 키워드로 삼아 도시적 풍경 속에서 노래한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로등이 반짝이는 도로를 등지고 서 있는 어떤 여자가 떠오른다.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정서는 아코디언과 피아노, 첼로와 클라리넷의 음색과 어울려 다가온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단색의 풍경에 콕 박혀있는 여자는 아파트 불빛과 화려한 야경 속에서 따뜻한 기억을 불러낸다. <기억, 흐르다>와 <거리>, 그리고 <하산>과 <떠나는 그대를>의 곡들은 그런 풍경으로부터 잦아드는, 닿을 수 없고 도착할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을, 다시 말해 ‘선천적 그리움’과 같은 정서를 불러낸다. 도시적 감수성이 고층 아파트와 유리로 뒤덮인 건물들의 번쩍거림으로부터 오는 세련됨이라면 동시에 쓸쓸함과 향수도 그로부터 생기는 법이다. 익명성의 거리, 가득 차 있지만 역설적으로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홀로 노래하는 여자,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희망이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도시의 네온사인에 가려진 어두운 달동네와 섬처럼 떠다니는 군중들,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속에 희망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희망에 대해서 노래한다. 이성호/신혜연의 앨범 《꽃이 나무에게》는 4계절을 모티브로 시작, 사랑, 고백, 일상 등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를 오래 바라보고 예쁜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신혜연은 그의 남편 이성호가 작곡한 노래를 소박한 꿈처럼 들려준다. 삶은 자연에 귀속된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혹은 산에 살든, 바다에 살든 어쨌든 인간의 삶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에 빠지고 함께 늙고 병들어 소멸하는, 자연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부부의 노래는 그런 사실을 소박한 사랑을 담은 노래로 가르쳐준다. 피아노와 팬플룻, 해금으로 구성된 악기 편성은 이런 정서를 목가적이면서도 토속적으로 들려준다. 물론, 토속적이지만 투박하지 않다. 현악과 관악이 어우러지는 순간은 느긋하고 편안한 감상에 빠지게 한다. 이 두 장의 음반은 모두 클래시컬하게 들린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말은, 오보에나 첼로, 피아노와 플롯과 같은 악기들, 흔히 우리가 ‘클래식 악기’라고 부르는 악기들이 사용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곡의 구성이나 편곡이 고급스럽고 편안하게 들린다는 뜻이다. 음악적으로는 세련되었고 정서적으로는 관조적이다. 기존의 노래운동 계열의 음악들, 혹은 포크 성향의 곡들이 투박하고 거친 질감의 사운드와 함께 토속적이고 목가적인 정서를 설파한 것과 비교할 만 하다. 물론 이런 특징들은 이들 공동체의 제작 환경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고, 또 그래서 태생적인 한계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근에 발표되는 음반들의 사운드는 모두 깔끔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운드나 녹음, 믹싱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음악의 표피같은 것이다.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예술적 발화 과정이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그런 정서에 몰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진심이다. 음악적 진심은 사운드의 활용과 함께 가사에 있다. 직설적이든 비유적이든 진심을 담은 노랫말, 이 두 장의 음반을 들으면서 내내 노랫말이 귓가에 어른거렸다. 이 노래들은 모두 따뜻하고 상냥하며,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이다. 익명의 쓸쓸함, 개인적인 감상들, 추상적인 희망, 이런 정서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끝까지 앙금처럼 남는 생각이다. (차우진_대중음악평론가) 컬쳐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