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내지
불어 원본 & 한글 번역본
그림: 실베스트로 니콜라치, 글: 지안카를로 디마지오
P3.
Prélude
프렐류드(서곡)
LE TALENT PÉNÈTRE DANS LES VEINES PAR DROIT HÉRÉDITAIRE. ET PAR LE SANG IL SE TRANSMET AUX GÉNÉRATIONS SUIVANTES.
재능은 유전법칙에 의해 혈관 속을 타고 흐른다. 그렇게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LA TRANSFORMATION EN GÉNIE A BESOIN D'UN ACTE D'ALCHIMIE.
재능의 변화에는 연금술이 필요하다.
P4.
À DIX ANS, JOHANN SEBASTIAN PERD SON PÈRE. IL CHERCHE UNE VIE EN MESURE DE L'ABRITER DU CHAOS. SON FRÈRE AÎNÉ, JOHANN CHRISTOPH, VA L'ACCUEILLIR.
열 살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아버지를 잃는다. 그에게 닥친 혼란을 견뎌낼 수 있는 안전한 삶이 필요했다. 그의 형 요한 크리스토프가 그를 돌봐주게 되었다.
P5.
LA MUSIQUE EST À L'INTÉRIEUR DE LUI-MÊME. DISCIPLINE, EXERCICE ET RIGUEUR FONT LE RESTE.
음악은 그의 내면 자체였다. 규율, 훈련, 엄격함이 그의 나머지를 이루고 있었다.
ON REGARDE DANS L'ÂME DU GARÇON. IL Y A UNE FLAMME ALLUMÉE.
이 소년의 영혼을 보라. 뜨겁게 타오르는 영혼의 불길을 볼 수 있다.
QUELQU'UN SOUFFLE POUR L'ÉTEINDRE. JOHANN SEBASTIAN COPIE LA MUSIQUE, SON FRÈRE LE LUI INTERDIT.
누군가는 그 불꽃을 꺼뜨리고자 했다. 바흐가 악보를 열심히 베끼며 배우고 싶어할 때, 그의 형은 벽장을 잠그고 악보를 숨겨 그것을 막았다.
P6.
À LÜNEBURG IL EST SEUL. PAUVRE. AYANT SI PEU, IL CALME SA FAIM AVEC LA MUSIQUE. IL MARCHE JUSQU'À HAMBOURG POUR ÉCOUTER REINCKEN, UN ORGANISTE DE ST. KATHARINEN.
뤼네부르크(중세 독일의 북부 도시)에서 그는 혼자였고, 가난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의 배고픔을 달랬다. 바흐는 어느 날 함부르크까지 먼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장트 카타리넨 교회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인 요한 아담 라인켄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였다.
IL EST AFFAMÉ.
그는 너무도 배가 고팠다.
UNE BONNE ÉTOILE LUI MONTRE DEUX DUCATS AU MILIEU DES DÉCHETS DE HARENGS.
그는 굶주림을 참으며 길을 걷다 어느 처마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누군가 버린 생선 대가리 사이에서 금화 두 개가 별빛 아래 반짝거렸다. 그는 그렇게 라인켄의 연주를 들으러 함부르크로 갈 수 있었다.
P7.
L'ADVERSITÉ NE L'ARRÊTE PAS. À ARNSTADT ON LUI CONFIE DES ÉTUDIANTS FAIBLES. BACH NE LE TOLÈRE PAS. 17 ANS PLUS TARD, IL ÉCRIRA LE CLAVECIN BIEN TEMPERE.
시련은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아른슈타트에서 그는 소수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소소한 삶을 견디지 못했고, 17년 후에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써내기에 이른다.
EN 1705, IL A UN TEMPÉRAMENT ARDENT. IL DIT À GEYERSBACH QUE, COMME BASSONISTE, C'EST UN ÂNE. GEYERSBACH EN LUI DEMANDE LA RAISON. BACH INSISTE: “TON BASSON BÊLE, SALE CHIEN” EST SA RÉPONSE.
1705년, 그는 아주 고약하고 까다로운 기질의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바순 연주자의 바순 소리를 아주 싫어해서 그를 멍청이라고 불렀다. 그 연주자는 바흐에게 이유를 물었다. “네 바순은 염소처럼 징징대고, 더러운 개 같은 소리를 내거든.” 이라고 바흐는 답했다.
P8.
LE CONSISTOIRE LUI INTIME DE NE PLUS OFFENSER LES ÉLÈVES.
장로회에서는 바흐에게 학생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통지하기에 이르렀다.
P9.
Fugue
푸가
POUR TOUTE RÉPONSE, BACH QUITTE ARNSTADT. IL VOYAIT AU-DELÀ DES MURS DE LA PETITE VILLE. IL VOULAIT RENCONTRER BUXTEHUDE, LE GRAND ORGANISTE. APPRENDRE DE LUI? EN PRENDRE LA PLACE? PAR UN JOUR COULEUR DE PLOMB, IL ENTAME UNE MARCHE DE DEUX CENT CINQUANTE MILLES.
어떤 이유에서든, 바흐는 아른슈타트를 떠났다. 그는 작은 도시의 벽들 그 너머를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대 오르가니스트 디트리히 북스테후데를 만나기로 했다. 그에게 배움을 청할 것인가? 그에게 자리를 얻을 것인가? 그는 그렇게 40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기 시작했다.
P10.
À LUBECK IL ENTREVOIT LE JOUR. IL AURAIT APPRIS DE BUXTEHUDE. MAIS POUR OBTENIR LA PLACE QU'IL CONVOITE, IL DOIT ÉPOUSER LA FILLE DE SON MYTHE. CELA NE L'INTÉRESSE PAS. QUELQUES MOIS APRÈS IL RENTRE À ARNSTADT, L'INSPIRATION L'ILLUMINE.
뤼베크(독일 북부 도시)에서 그는 북스테후데로부터 큰 감명을 받고, 그로부터 배움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북스테후데로부터 바흐보다 열 살 가량 연상인 딸과 결혼하면 원하는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바흐는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몇달 후 그는 음악적 영감이 가득 충만한 상태로 아른슈타트로 돌아왔다.
LE CONSISTOIRE LUI DEMANDE LA RAISON DE SA LONGUE ABSENCE. BACH NE CONSIDÈRE PAS NÉCESSAIRE DE RÉPONDRE. SA RÉSIDENCE À ARNSTADT NE DURERA PAS LONGTEMPS.
장로회에서는 바흐가 긴 휴가를 내고 떠난 것에 대한 사유를 요구했지만, 그는 대답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더 길게 아른슈타트에서 머무를 생각이 아니었다.
P11.
IL DEMANDE UNE TOTALE DISPONIBILITÉ POUR SON ART. LE CONSISTOIRE NE LA LUI ACCORDE PAS.
그는 그의 음악에 대한 완전한 재량을 갖기를 원했지만, 장로회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L'EXPÉRIENCE NAÎT DU CONFLIT. HÉRACLITE L'APPELAIT POLEMOS. LES PHILOSOPHES DIRONT: THÈSE, ANTITHÈSE, SYNTHÈSE.
충돌이 반복되었다. 철학자 헤라클라이토스는 이것을 투쟁이라고 표현했다. 철학자들은 정-반-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LES MUSICIENS L'APPELLENT CONTREPOINT. CE N'EST QUE...
음악가들은 이것을 대위법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P12.
HARMONIE PROTÉGÉE PAR DES COUCHES DE SILENCE.
고요의 겹들에 둘러쌓인 조화가 아니었다.
DE SILENCE.
고요 자체의 조화였다.
P13.
ET PARMI CES BASTIONS IMPALPABLES, LA LOGIQUE DE FER DE BACH SE FORGE.
이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들 사이에서, 바흐의 강철 같은 논리도 더 날카로워졌다.
L'ART VEUT DES MOYENS. CELA EXIGE DE LA RECONNAISSANCE. LE DUC WILHELM DE WEIMAR LUI REFUSE LA PLACE DE KAPPELMEISTER. BACH INSISTE TROP.
예술에는 자금이 필요했고, 이에는 누군가의 지지와 원조가 필요했다. 바이마르의 영주 빌헬름 에른스트는 바흐가 바이마르를 떠나 쾨텐의 궁정악장으로 가는 것에 반대했고, 바흐는 그 자리를 간절히 원했다.
P14.
LA RÉPONSE ARRIVE, C'EST LA PRISON. MAIS LE CHEMIN DIFFICILE NE L'ARRÊTE PAS.
영주의 답이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감옥행이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은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SA THÉORIE DU CONTREPOINT? ARROGANCE CONTRE INSPIRATION, POUVOIR CONTRE TRANSCENDANCE, MÉLODIE RACHETANT LA BILE ET LA FAIM.
대위법의 이론과도 같았다. 영감을 알아보지 못하는 오만함, 탁월함을 억압하는 욕심,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곡들을 쓰면서 그는 감옥에서의 배고픔과 걱정을 줄일 수 있었다.
RAGE QUI FREINE L'EXTASE QUI APAISE LA FURIE. C'EST LA DISCIPLINE QUI UNIFIE TOUT.
분노가 멈추고, 황홀감이 증오를 가라앉혔다. 그것은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는 엄격한 규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