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 음반' 삽화에 수록된 불어 번역본
P3.
JE SUIS VENU AU MONDE TRÈS JEUNE DANS UN TEMPS TRÈS VIEUX.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P4.
JE SUIS NÉ A HONFLEUR (CALVADOS) ARRONDISSEMENT DE PONT-L'ÉVÊQUE LE 17 MAI 1866...ME VOİCİDONC QUINQUAGÉNAIRE, CE QUI EST UN TITRE COMME UN AUTRE...
나는 1866년 5월17일 퐁 레베크 지역의 옹플뢰르에서 태어났소. 고로 내가 50대로 보이겠지만, 그건 나를 부르는 다른 이름일뿐이라오.
*옹플뢰르(Honfleur,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Region) 칼바도스(Calvados) 데파르트망(Department)에 위치한 도시)
P5.
Il rêve avant de marcher. Sa mére meurt il a 4 ans. Depuis, il la cherche... On le confie à ses grands parents. Mort mystérieuse de sa grand-mére retrouvée' noyée sur la plage. Il a 12 ans et plonge dans une adolescence perturbée. Ecole, pension - mal noté: indocile, farfelu, paresseux... Il plane avec "SEA BIRD”son oncle coureur et mécréant notoire. Son pére se remarie. Il hérite d’une belle-mére pianiste militante et aussitôt entre en haine de la Musique et du Conservatoire.
에릭 사티는 걷기도 전부터 꿈을 꾸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4살일 때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는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그의 조모는 바닷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열두 살이었고,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맞이했다. 기숙사 학교를 다닌 그는 성적이 나쁘고 반항기 가득한, 별나고 게으른 학생이었다. 그는 “바다새”로 불리던 바람기 가득하고 신앙심이라고는 없는 삼촌과 어울렸다. 아버지는 재혼을 한다. 사티는 강압적인 피아니스트였던 계모로부터 음악을 배웠고, 결국 음악과 *콘세르바투아르를 증오하게 된다.
*콘세르바투아르(Conservatoire de Paris, 파리 음악원, 1795년에 설립된 단과대학으로 음악, 무용, 연기, 그림 등의 분야에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P6.
Buveur blagueur, il termine les “3 SARABANDEs, ébauche les GYMNOPÉDIES. Une vie de pure Folie avec ses “copains d’la neuille”. Esthètes hirsutes, littérateurs novices, rapins et bohèmes…Tapeur à gage et pianiste fantasque, il croise BRUANT, LAUTREC, RAVACHOL (dit-on)... et la belle SÚZANNE ...
술고래에 농담꾼이었던 그는 3개의 사라방드 작곡을 마치고 짐노페디의 초안을 완성한다. 거친 탐미주의자들, 신예 작가들, 떠돌이 화가들과 보헤미안들 같은 ‘어둠의 동지들’과 어울리던 광기의 시절에, 가진 것은 빚투성이에 변덕스러운 피아니스트일뿐이었던 그는 아리스티드 브뤼앙, 툴루즈 로트렉, 라바콜 등과 한 시대를 스쳐지났다. 그리고 그의 평생의 연인인 아름다운 수잔 발라동과도 만나게 된다.
P9.
LES PIANOS C'EST COMME LES CHÈQUES ÇA NE FAIT PLAISIR QU'A CEUX QUI LES TOUCHENT.
피아노는 수표와 같아서 만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기쁨을 준다오.
P10.
Cher Petit Biqui
Impossible De rester sans penser à tout Ton être, tu es en moi tout entière partout.
내 사랑스런 비키(수잔 발라동을 부르던 애칭)
당신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오.
어디에서도 당신은 내 안에 가득하오.
Je ne vois que tes yeux exquis Tes mains douces Et tes petits pieds d'enfant...
당신의 섬세한 눈빛과, 부드러운 손과, 아이 같이 작은 발만이 눈에 아른거리오.
P11.
<> aime à la Folie. Aime si fort d'être si seul. Aime La VALADON...Biqui si libre, si sensuelle, si infidéle... Une jalousie féroce lui griffe l'āme. C'est le temps des cris, des gilles. SATIE s'enfuit. Paranoïaque, veut-être protégé par la police. << POUR MOI IL N'Y A PLUS QUE LA GLACIALE SOLITUDE QUI MET DU VIDE DANS LA TÊTE ET DE LA TRISTESSE PLEIN LE CœUR:
코르토 거리의 이 광인은 미친듯이 사랑을 했다. 너무 사랑해서 그는 혼자였다. 수잔 발라동, 그의 비키는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이었으며 그만을 사랑해주지 않았다. 불 같은 질투가 그의 영혼을 할퀴어댔다. 절규와 모욕의 시간들이었다. 사티는 그 관계로부터 도망쳤다. 집착에 가득한 채로, 그는 차라리 경찰에 의해 보호되길 바랐다. «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내 머리를 공허함으로, 내 심장을 슬픔으로 채우는 얼음 같은 외로움뿐이다. »
P12.
JEUNES GENS, N'ALLEZ PAS AU CAFÉ; ÉCOUTEZ LA VOIX GRAVE D'UN HOMME QUI YA BEAUCOUP ÉTÉ. MAIS NE LE REGRETTE PAS, LE MONSTRE !
젊은이들이여, 카페에 가지 마시오. 그 곳에 충분히 넘치게 있었던 자의 무거운 충고를 들으시오. 하지만 이 괴물은 그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는다오.
*당시 몽마르뜨의 카페는 음료를 마시거나 만남의 공간으로만 운영된 것이 아니라 음악 연주가 이루어지고 작은 연극들이 상연되기도 하는 공간이었다.
P14.
Clown sacristain, il crée une œuvre influencée par le folklore roumain et l'univers du cirque <”C'EST UN MÉTIER DE “CON" Si J'OSE DIRE QUE CELUI D'ARTISTE>> . ET <
반항기 가득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루마니아 민속극과 서커스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 난 예술에 질렸어. 너무 많은 지겨운 일들을 해야 해. 내가 예술가들의 일에 대해 감히 말해도 된다면, 이건 머저리나 하는 일이야.
그리고 모두가 당신에게 내가 음악가가 아니라고 이야기할거야. 난 그저, 소리를 측정하고 받아 쓰는 사람들 중 한 명일뿐이지. »
P15.
LE MUSICIEN EST PEUT-ÊTRE LE PLUS MODESTE DES ANIMAUX MAIS IL EN EST LE PLUS FIER.
어쩌면 음악가란 그저 가장 허세가 심하면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동물일지도 몰라.
P16.
"Etonne-moi”, dit DIAGHILEV au jeune COCTEAU Celui-ci réuni, SATIE(Musique) et PİCASSO, le “Kubiste"(Costumes, decors). le Cirque sur scéne. Le théâtre, dans le théâtre. Un ballet aux couleurs de scandale et de succés... PARADE
« 날 놀라게 해 보게 », 러시아의 발레 프로듀서이자 무대미술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젊은 장 콕토(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에게 말했다. 이렇게 음악을 맡은 에릭 사티와, 무대와 의상을 맡은 입체파 천재 화가 피카소가 무대를 통해 만나게 된다. 무대 위의 서커스, 연극 속의 연극, 이렇게 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이 화려한 공연은 성공적으로 치뤄진다. 바로 발레 « 파라드(Parade) » 다.
P17.
JE ME SUIS TOUJOURS ÉFFORCÉ DE DÉROUTER LES SUIVEURS, PAR LA FORME ET PAR LE FOND A CHAQUE NOUVELLE OEUVRE. C'EST LE SEUL MOYEN POUR UN ARTISTE D'ÉVITER DE DEVENIR CHEF D'ÉCOLE; C'EST-A-DIRE PION.
나는 항상 모든 새 작품에 있어서 형태나 기본에서부터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학교 교장 같은 졸개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P20.
Ah! les beaux dimanches, chez le bon DEBUSSY. Amitié orageuse autour d'une bonne table. Le riche et le pauvre s’aimaient tendrement. Et SATIE de conclure: “POURQUOI NE VEUT-IL PAS ME LAISSER UNE TOUTE PETITE PLACE DANS SON OMBRE? JE N'AI QUE FAIRE DE SON SOLEIL.”
아 ! 그 아름다운 일요일들에, 멋진 드뷔시의 집에서, 훌륭한 식탁 주변이 시끌벅적한 환대로 가득했다오.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서로를 다정하게 사랑했었지. 그리고 사티가 이렇게 마무리 지었지. « 왜 그는 나를 그의 그림자 속에 머무르게 두지 않을까? 나는 그의 햇살 아래 있는 수 밖에 없다네. »
P21.
« GARDONS NOUS DU VIRUS WAGNÈRIEN IL FAUT ABSOLUMENT FONDER UNE ÉCOLE DE MUSIQUE FRANÇAISE ET SANS CHOUCROUTE SI POSSİBLE»
바그너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지키자구.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프랑스 음악학교를 세워야 해. 그리고 가능하면 *슈크르트는 먹지 말자구.
*슈크르트(Choucroute) :독일식 양배추 절임 요리. 독일인인 바그너의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표현.
P22.
Projet pour un
buste de M.
Erik SATIE
(peint par lui-même),
에릭 사티 자화상
ARCUEIL-CACHAN, derniére demeure du "BON MAITRE”Un lieu digne de M'LE PAUVRE”. “DANS CE COIN ON DEVINE LE SEJOUR MYSTÉRIEUX DE NOTRE DAME BASSESSE. Dans ce musée du Foutoir peuplé de fantômes, il s'exerce à la Solitude Et à l'amertume nonchalante...
아르퀘이유 카샹은 이« 훌륭한 거장 »의 마지막 거처로, « 가난뱅이 씨 »에게 걸맞는 곳이었다. 그가 이 거리에서 지낸 것으로 추측되는 시기에 « 비천한 부인 »의 이미지가 만들어졌으리라. 가려진 존재들이 가득한 쓰레기장 같은 곳에서 사티는 고독함과 무기력한 고통을 안고 살았다.
P23.
NOUS N'AVONS PLUS BESOIN DE NOUS DIRE “ARTISTE”_LAISSANT CETTE DÉNOMINATION RELUISANTE AUX COIFFEURS ET AUX PÉDICURES
우리는 더 이상« 예술가 »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호칭 따위 이발사와 손톱관리사에게 맡겨버리자.
P24.
_SÍ JE SUIS FRANÇAIS? BIEN SUR... POURQUOI VOULEZ-VOUS QU'UN HOMME DE MON AGE NE SOIT PAS FRANÇAIS?...
내가 프랑스인이었다면 ? 물론... 왜 내 나이의 남성이 프랑스인이 아니길 바라는가 ?
BIEN QUE NOS RENSEIGNEMENTS SOIENT FAUX, NOUS NE LES GARANTISSONS PAS.
우리의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굳이 책임지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