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 숲도 땅도 온통 재즈빛 압둘라 이브라힘 고전 재즈의 우아미, 이국적(음악인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정서에서 나오는 개성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이런 규격미들이 어느새 음표들의 숲 속에서 틀을 벗고 산책도 하고 축제도 벌인다. 자유, 자유. 달라 브랜드란 본명에서 이슬람교인 압둘라 이브라힘으로,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피해 세계로, 음악과 삶의 자유를 찾아 길 위로 자신을 늘 이끌고 떠돌았던 한 재즈음악인의 소리없는 열정. 재즈의 본류를 다루면서도 그 물길을 어느새 압둘라 이브라힘류(流)로 만든 그의 노련한 연주력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정신은 이 음반을 단순한 이국적 재즈음반에 머물지 않게 한다. 칠순의 노령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자유의 힘이 ․ 등 24곡의 간결하지만 변화무쌍하고 다채로운 음악들을 가득 채운다. 2001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페스티벌 실황을 녹음한 음반이지만, 이브라힘의 사색적이면서도 여유롭고 다채로운 연주와 작곡 능력은 어떤 녹음도 모두 라이브로 느끼게 할 듯. “나는 그의 이름이 실린 레코딩이라면 무엇이든 매료될 준비가 돼 있다”는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의 말, “사람들은 압둘라 이브라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를 숭배한다”는 <가디언>지의 말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 처음엔 특별히 이국적이지도 안고 고난도 기교로 귀를 잡아끌지도 않지만 어느새 듣는 이들을 별밤 아래 숲가로 인도하는 마법같은 음악의 향연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음반 표제가 ‘아프리카의 마법’이라 그런가.
<케이프 타운 리비지티드>에 이은 아프리카의 영혼을 노래한 장대한 서사시 인종차별 恨서정적 승화 안정된 생활 속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연주에 몰두하는 것이 음악인들의 오랜 꿈인 반면, 척박한 현실의 힘이 도리어 치열한 창작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좋든 나쁘든,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도 예술행위의 한 부분이 아닐까. 남아프리카 출신의 피아니스트 압둘라 이브라힘의 생애를 살펴보면, 음악과 삶의 자유를 찾아 평생 정처 없이 떠돌던 순례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올가을이면 칠순의 노령에 이르는 음악인. 달라 브랜드란 이름으로 데뷔했지만, 이슬람에 귀의하며 압둘라 이브라힘으로 개명했고, 그 오랜 활동 경력에 어울리듯 지금까지 전 세계를 배경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공연을 치러낸, 아프리카가 낳은 위대한 재즈 음악인이다. 주지하다시피, 남아프리카의 극심했던 인종차별은 많은 흑인 예술가와 사회 인사를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고난과 갈등의 20대를 보낸 이브라힘도 어려운 연주환경을 피해 서른 살이 되기 전 유럽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는데, 그때 그의 곁에서 큰 힘을 준 사람이 바로 아내인 백인 보컬리스트 사티마 벤자민이었다. 그녀는 마침 유럽에서 장기간 연주여행 중이던 듀크 엘링튼을 삼고초려해 이브라힘의 연주를 듣도록 권유했고, 이 거장의 후원 속에 이브라힘은 비로소 연주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유럽은 그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이 돼 줬고, 이때부터 그만의 독창적인 작곡과 연주는 더는 남아프리카만이 아닌, 전 세계 재즈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존재로 자리하게 됐다. 지난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브라힘은 어느 한때를 전성기라 칭할 수 없을 만큼 꾸준하고 왕성한 활동을 지속했다. 아프리카 출신이란 점 때문에 마치 그의 음악이 원초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매우 토속적인 면모를 지닐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브라힘의 음악은 결코 한 대륙의 기질만을 대변하지 않고, 어느 사회, 어느 국가의 음악팬들에게도 깊이 각인될 수 있을 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본의 아니게 모국을 떠나야 했던 이의 아픔은 광활한 서사성과 섬세한 서정미로 승화돼 드라마틱하게 펼쳐졌고, 탁월한 작곡과 편곡 실력은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감동을 안겨 주곤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이브라힘의 음악은 부당하게 과소평가된 경향이 짙다. 한때 미국에 정착한 적도 있지만, 90년대 들어 남아프리카의 정치상황이 호전되자 이브라힘은 다시 케이프타운으로 귀향해 생의 마지막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 동안 발표된 곡 대부분은 직접적으로 아프리카를 소재로 삼았으며, 기회가 될 때마다 고국의 젊은 음악인들을 유럽과 미국에 진출시키려 애쓴 것도 잘 알려진 사실. 30여년의 긴 세월을 이국땅에 머물면서도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남아프리카의 정경이 그대로 머물러 있던 모양이다. 최근 들어 발표된 이브라힘의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아직도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는 인상 또한 매우 강하다. 역시 그는 순례자였던 걸까. 혹시 고향에 돌아와서도 또 다른 순례의 길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현준<재즈비평가·서울예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