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탄 게츠(Stan Getz)는 1927년 2월 2일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했다. 이미15세때 뉴욕에서 전문 뮤지션이 되어 있을 만큼 재주가 출중했던 그는 스탄 켄튼과 배니 굿맨 악단을 거쳐 우디 허만 악단에서 일급 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우디 허먼 악단은 그를 포함해서 뛰어난 테너 색소폰 주자가 많았는데, 당시 이들을 가리켜 "4인방(Four Brothers)"라고 부를 만큼 명성이 대단했다. 이 맴버가 바로 스탄 게츠, 주트 심스, 세르쥬 샬로프 그리고 허비 스튜어트 등이다. 스탄은 우디 허만 악단에서 활동하던 중 1948년에 취입한 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드디어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어 독립하기에 이른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재즈의 시대가 드디어 화려하게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성기는 의외로 짧게 끝나고 말았다.
1940년대 말부터 불어 닥친 비밥 재즈의 열풍은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재즈계의 중앙에 서게 만들었다. 이제 여성적인 취향의 게츠는 매번 뒷좌석으로 앉아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스탄 게츠의 1950년대 후반기는 별 다른 특징이 없었던 고난의 시절이었고, 1961년에 가서야 "보사노바 재즈"의 열풍이 불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아마도 보사노바 재즈는 스탄 게츠류의 쿨 재즈와 브라질의 삼바 리듬이 절묘하게 결합된 그야말로 듣기 좋고 편한 재즈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역시 별로 운이 좋지 못했던 스탄 게츠답게 이 유행 또한 단기간에 끝나고 말았고, 재즈의 중심부는 이제 비밥 시대를 지나 프리 재즈로 향하고 있었다. 재즈의 이러한 재빠른 변화에 뒤쳐져서 그저 관망만 하고 있었고 한때는 유럽에서 휴식이나 취하며 거의 재즈에서 손을 뗐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 왔고 여전히 예전과 같은 달콤하고 애잔한 재즈를 연주해갔다.
사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스타일에 걸맞게 많은 후배를 길러낸 좋은 선배이기도 했다. 칙 코리아, 토니 윌리엄스, 게리 버튼, 스티브 스왈로우 등은 모두 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1991년에 타계한 스탄 게츠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가 아프거나 지칠 때마다 짤막한 휴식을 제공하는 달콤한 음악을 선사해왔다. 그러나 그가 이런 단순한 사탕발림을 넘어선 뛰어난 뮤지션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역시 쉬운 것이 어려운 것이다. 모차르트의 달콤한 멜로디가 그토록 복잡한 악보와 형식미 위에 구축된 것처럼 역시 스탄 게츠의 우수 또한 한순간의 착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만의 깊은 내면세계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