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은 1988년 런던에서 열린 칼 플래쉬 국제 콩쿨에서 대상을 받으며 일찍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차세대를 이끌어가는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격조 높은 기품과 함께 시정이 은근히 배어 있고, 위장된 냉기 속에서도 타오르는 격정을 느낄 수 있고, 완벽한 테크닉으로 악기를 아주 쉽게 다루고 자신감에 차 있는 연주자인 양성식은 4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11세 때 첫 독주회를 가져 음악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고, 그 후 프랑스로 건너가 말메종 음악원에서 1년 기본기를 익힌 다음 13세의 어린 나이로 파리 고등 국립 음악원에 최연소로 입학한 지 3년 만에 정규과정을 마치고 동 음악원의 석사과정에 수석 입학하여 2년 만인 18세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곳에서 제라르 풀레와 미셀 오클레의 사사를 받았다. 같은 해 영국 길드 홀 예술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프라 니만 교수(칼 플래쉬 사사)밑에서 배우고 1987년 두 번째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전액 장학생으로 수학하였다. 그는 17세 때부터 이미 각종 국제 콩쿨을 통해 새로운 유망주로 부각되었는데, 83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쿨에서 3등을 84년 롱-티보, 85년 리피저, 86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입상한 것에 이어 88년 세계 굴지의 5대 바이올린 콩쿨인 칼 플래쉬에서 대상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국제 바이올린 콩쿨을 석권하는 쾌거를 올렸다.
1984년 연주자로는 최고 과정인 파리 고등 음악원의 트로와지엠 시클르(석사이지만 박사과정에 해당하는 연주자 코스)를 1등으로 졸업했다.
이 밖에도 양성식은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로린 마젤 지휘), 모스크바 교향악단(드미트리 키타옌코 지휘), 로얄 필하모닉(예후디 메뉴인 지휘), 필하모니아, BBC 교향악단, 몬테카를로 교향악단, 스코틀랜드 국립 교향악단, 아일랜드 국립 교향악단, 바르샤바 챔버 오케스트라, Galbenkian 교향악단, Stavanger 교향악단, 포르투갈 국립 교향악단, 크라코비 실내악단 등 유럽전역에 걸친 유수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그의 연주경력을 쌓았다. 또한 유럽 주요도시인 런던, 파리, 바로셀로나, 프랑크푸르트, 보르도, 로테르담, 글래스고우, 더블린, 부다페스트, 포르투갈 그리고 세계 제일 수준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우 홀과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홀 등에서의 공연으로 그의 명성을 전 유럽에 떨쳤다.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 연주 후 유럽 진출의 확실한 발판을 다진 그는 1992년 뉴욕 Merkin 홀에서의 독주회를 기점으로 싱가폴, 필리핀 등 동서로 그의 활동 무대를 넓혀갔으며, 88 서울 올림픽 문화 예술 축전 행사에서 동아일보 주최로 한소 연주회를 통해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모스크바 교향악단과 협연하여 차이코프스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 음악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를 기념으로 한국 CBS가 실황 녹음하였고, 지난 1994년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브람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SONY와 음반으로 남겼다.
1993년 이후 매년 여름 시즌 프랑스의 Flaines Musique Festival에 고정 초청되어 마스터 클래스 및 실내악 공연을 통해 연주자 뿐 아닌 교수로써도 지도력을 인정 받고 있으며, 니스와 쿄토 페스티벌에도 해마다 초청되고 있다. 그 외에도 체코, 일본 순회공연 등을 통해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9년 5월에는 기타리스트 장승호와 파가니니의 대표곡을 한국 최초로 출시하였으며, 1999년 11월에는 롱-티보 국제 콩쿨의 심사위원으로 위촉 받아 한국을 대표하게 되었다.
양성식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1727년 조세프 과르네리우스가 제작하고 파가니니가 연주하던 명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