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피셔는 아버지가 보헤미아 출신의 음악가로 이전에는 체코 프라하에서 연주했었다. 피셔는 바젤 음악원에서 한스 후버에게 사사했고, 베를린 시테른 음악원의 명교사 마르틴 크라우제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는 리스트의 제자로서 라이프치히파의 거장이며 아라우도 그의 수제자였다는 사람이다.
졸업후 피셔는 시테른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로 1905년부터 1914년까지 재임했고 베를린 고등음악교수도 겸임으로 1935년까지 재직한 한편, 연주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뤼벡 음악협회, 뮌헨 바흐협회의 지휘자로서도 활약했고 베를린에서 자신의 실내합주단을 편성하여 유럽을 순회했다. 1931년에는 아르투르 슈나벨의 후임으로 베를린 음악대학 피아노과 교수가 되어 베를린을 본거지로 한 대부분의 레코드 녹음은 이 무렵부터이다. 50세 전후인 1933년부터 5년간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방탕자', '즉흥곡집' 등을 녹음했으며, 1930년부터 바흐 녹음을 시작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레코딩은 1933년부터 36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역사상 최초의 전집 녹음이며, 푸르트벵글러와 협연한 '황제협주곡' 은 그의 대표적 명반으로 애청되고 있다.
피셔의 레파토리는 바흐에서 낭만파에 이르는 독일음악 중심이며, 전통을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연주양식을 완전히 소화하여 지적이면서도 웅대한 구성력과 힘찬 정열이 돋보이는 금세기 건반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이다. 피셔의 평균율 연주의 특징은 하나하나의 음에 표정이 살아 있고, 나타나는 선율을 차례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하는 표정의 관리에 역점이 있다. 대칭되어 나타나는 선율마다 주역이 아닌 선율은 뒤로 물러나 주가 되는 선율을 뒷받침하여 서로 상조하면서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마슬사와 같은 터치가 피셔의 매력 포인트이다. 곡의 핵심에 도달하는 이지적인 총명함과 필링이 조화되어 이뤄내는 찬란한 표정 그 자체이다. 지금으로 볼때는 낡은 듯한 낭만파 음악에서 흐르는 로맨틱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녹아 흐르는 표현은 삼가고 있다. 구도자의 자세로 임하는 모습인 피셔의 연주는 단아하면서도 치밀한 설득력이 주축을 이루는 범 우주적 세계를 시사하는 고요함이 격정속에 투영되어 제 갈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