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리톤가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출생. 로마의 산타체칠리아음악원 등에서 공부한 후 1956년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60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1964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과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각각 데뷔하고 그후 세계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리골레토》, 《시몬 보카네그라》, 《맥베스》, 이아고(《오셀로》) 등 주로 G.F.F.베르디의 오페라에 출연하여 좋은 평판을 받았으며 또 G.도니체티, V.벨리니 등의 작품도 노래하여 이름을 떨쳤다.
카푸칠리는 비교적 늦은 데뷔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재능으로 36세의 나이에 밀라노 스칼라극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마리아 칼라스, 페루초 탈리아비니 등 세계 최정상의 성악가들과 공연하며 명성을 쌓았다. 카푸칠리는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의 명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자주 오페라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베르디의 오페라 명작 "돈 카를로"는 1950년대에는 이탈리아에서조차 자주 공연되는 상연물이 아니었다. 적어도 흥행 측면에 대해서는 일종의 도전이었던 "돈 카를로"가 1959년 볼로냐에서 열렸다. 당시 30세였던 트리에스테 출신의 대형 신인 바리톤 카푸칠리의 출연은 한마디로 극장을 들엇다 놓았을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하루에 두 공연에 출연할 정도로 골리앗 같은 넘치는 스테미너를 가졌으며 저음에서 고음에 이르기까지 2옥타브 반의 음역을 흠잡을 때 없이 고르게 노래하는 진정한 바리톤의 색채와 아름다움을 갖춘 그의 목소리는 다른 주요 출연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의 타고난 강질의 목젖은 곧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왔고, 20세기 후반 최고의 바리톤 중 한명으로 꼽히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카푸칠리를 오페라의 길로 이끈 건 그의 가족들. 오페라 애호가들이었던 그들은 성악교육을 받지 않았던 카푸칠리의 목소리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카푸칠리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1949년에 은퇴하고 성악 선생을 하고 있던 루치아노 도나조에게 오디션을 받은 카푸칠리는 도나조로부터 성악 공부를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건축가가 자신에게 더 적성이 있다고 생각한 카푸칠리는 성악 레슨을 그만둔다. 하지만 카푸칠리의 특출한 재능을 눈여겨본 도나조는 포기하지 않고 무료로 성악 레슨을 해주겠다고 해 반신반의하는 카푸칠리를 피아노 앞에 끌어다 놓았다.
수영과 다이빙에 능하던 카푸칠리는 놀라운 지속력의 호흡 콘트롤을 보여주게 되고 부드러운 프레이징과 메사 보체의 테크닉까지 두루 익히게 된다. 도나조의 지도아래 트리에스테의 테아트로 "주세페 베르디"에서 작은 역할들을 노래한 카푸칠리는 1955년 드디어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 라 스칼라 오페라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심사위원들을 깊이 감동시킨 카푸칠리에게 심사위원들은 비오티 콩쿠르에 출전하라는 제안을 한다. 이윽고 출전한 비오티 콩쿠르에서 우승한 카푸칠리는 밀라노 테아트로 누오보와 출연 계약을 맺고 1957년 "팔리아치"의 토니오 역으로 밀라노에서 데뷔한다. 1958년에는 명장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하는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 몬포르테 역으로 시칠리아 팔레르모 마시모에서 데뷔했고 이어 "리골레토", 그리고 카푸칠리에게 반한 세라핀의 초청으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 역의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엔리코역을 부르게 된다. 50년대에 착실히 명성을 쌓아간 카푸칠리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적으로 큰 활약을 펼치게 된다.
1960년 카푸칠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역으로 데뷔를 했고, 이어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불렀다. 1964년에는 소프라노 존 서덜랜드와 함께 라 스칼라에서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1967년에 대연출가 비스콘티 연출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역을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불렀다. 1969년에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베르디의 "포스카리가의 두 사람"과 벨리니 '청교도"에 출연하는 등 오페라 극장에서 승승장구를 했다. 1970년대의 카푸칠리는 중량감있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를 비롯해서 "오텔로"(1974), "가면무도회"(1975)를 자신의 레퍼토리로 만들었고 동시에 무거운 베르디 오페라 역들뿐만 아니라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비롯한 벨칸토 오페라들로 레퍼토리에 균형을 갖추었고 깊은 해석을 더해 청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음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1960~70년대에 영웅적인 목소리에 부드러움을 겸비한 카푸칠리는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바리톤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고 남미와 남아프리카 순회 공연을 통해 전세계 오페라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카푸칠리.
노년에 내한 공연을 가져 성악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그의 멋진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그의 장기 오페라 레퍼토리를 원 없이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할 따름이다.
“영웅적인 목소리에 부드러움을 겸비한 카푸칠리는 이탈리아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바리톤이다” - 음악평론가 장일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