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2월 2일, 또 한 사람의 소중한 음악인이 재즈 팬들의 곁을 떠났다. 1926년 8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향년 76세의 일기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 맬 왈드론(Mal Waldron). 그의 이름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Soul Eyes'나 'Left Alone', 혹은 'The Seagulls of Kristiansund' 등의 명곡을 떠올렸고, 그 누구도 무심한 표정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의 이름을 동시에 연상하곤 했다. 일찍이 1959년에 세상을 떠난 빌리 할러데이의 마지막 피아니스트로 그녀의 최후를 지켜보았던 맬 왈드론은, 재즈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여느 비르투오소처럼 숱한 화제를 불러모은 인물은 아니었지만 1950년대부터 반세기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재즈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한결 같이 자신의 영역을 꿋꿋이 지켜낸 존재였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이콘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10대 때까지 앨토 색소폰과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즐겼던 맬 왈드론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재즈로 전향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내 대학에서의 재즈 교육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때에 학업을 행한 그는 이미 1950년대 초반부터 여러 중요한 음악인들과의 협연을 통해 소중한 연주 경험을 쌓게 되었는데,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밴드에서의 활동(1954년∼1956년)과 빌리 할러데이 밴드에서의 피아노 연주(1957년∼1959년)는 비로소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찰스 밍거스가 남긴 명작 [Mingus at the Bohemia](1955)와 [Pithecanthropus Erectus](1956)에서의 연주는 맬 왈드론을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스타일리스트로 발돋움하게 했다. 빌리 할러데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참여한 에릭 돌피(Eric Dolphy)의 파이브 스팟(Five Spot)에서의 공연(1961년) 또한 맬 왈드론을 얘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순간이다.
이후로 몇 차례 영화음악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던 맬 왈드론은 1960년대 중반, 고향인 미국을 등진 채 유럽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몇 년 간의 유럽 연주 여행을 마친 뒤 1967년 뮌헨에 정착한 그는 더 이상 미국 음악인이 아닌 유럽 음악인으로서의 새로운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그의 지역적 배경이 바뀌었다는 의미 뿐 아니라, 서서히 재즈의 진정한 헤게모니를 넘겨받기 시작했던 1960년대 말의 유럽 재즈계가 그에게 적절한 창작의 환경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현대 재즈의 발전에 막대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독일 ECM 레이블의 첫 작품 [Free At Last](1969)를 녹음한 주인공이 되었으며, 1971년에는 엔자 레이블의 네 번째 작품이자 현대 재즈의 최고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힌 바 있는 [Black Glory]를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역사는 맬 왈드론의 이름을 대표적인 유럽 재즈 음악인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1970년대의 맬 왈드론은 엔자 레이블을 통해 여러 걸작들을 선사했다. 냉정하게 들리지만 순수한 서정성을 잃지 않는 작곡 스타일과,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그림자가 느껴지면서도 현대 음악의 특성이 보다 잘 접목된 연주 스타일이 바로 이 시기에 정착되었는데, [Up Popped the Devil](1973), [Hard Talk](1974), [One-Upmanship](1977) 그리고 [Moods](1978) 등의 앨범들은 지금도 1970년대의 정통 재즈가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의 대열에 서서 수많은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지적 감성, 혹은 감성적 이성이랄까. 그의 음악에서 찾아지는 이 역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원동력이다. 결국 재즈 록의 물결이 거셌던 1970년대에, 맬 왈드론은 또 다른 이면에 서서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성을 완성시켜 나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맬 왈드론의 곁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인물로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의 명인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를 특기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맬 왈드론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중요한 화두는 그 자신, 재즈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믿었던 듀오 연주의 미학이었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해 여러 색소포니스트들과 뛰어난 듀오 작품들을 여럿 녹음했는데, 앞서 언급한 스티브 레이시와의 연주를 비롯하여 앨토 색소포니스트 마리온 브라운(Marion Brown)과의 활동이 특히 인상적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듀오 연주의 활동 이외에도 퀸텟을 위시한 중소규모 편성의 여러 작품들이 많은 이들의 꾸준한 칭송을 받았지만, 맬 왈드론이 듀오 연주에 대해 지니고 있던 강한 애정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려진 부분이다. 그는 재즈의 본질이 대화와 교감에 있다고 파악했으며, 연주하는 입장이나 듣는 입장 모두에게 듀오 연주가 이러한 특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참여한 듀오 작품의 절대 다수는 최고의 음악성을 선보인 역작들로 평가받았다.
스티브 레이시와의 녹음으로 이탈리아의 소울 노트(Soul Note) 레이블을 통해 발표된 [Sempre Amore](1986)와 [Communique](1994)는 소프라노 색소폰과 피아노 듀오 연주의 결정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마리온 브라운과 함께 한 [Songs of Love and Regret](1985)과 [Much More](1988)는 프랑스의 프리랜스(Freelance) 레이블에서 제작되어 최근까지 매니아들의 꾸준한 추적을 받고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앨범들이다. 이러한 작품들 이외에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테너 색소포니스트 짐 페퍼(Jim Pepper)와의 앨범이나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 로베르토 오타비아노(Roberto Ottaviano)와의 듀오 연주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아치 셰프와의 협연 [Left Alone Revisited]는 앞서 거론한 작품들이 지닌 장점들을 한데 집약시켜 놓았으며, 연주나 구성 모든 면에 있어 앞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길 것으로 기대되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