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클라라 하스킬>
모질고도 혹독한 병마와 전쟁의 공포를 이겨낸 순수하고 아름다운 피아니즘
<모차르트의 모차르트!>,<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담아낸 연주!>라는 극찬을 받은 클라라 하스킬.
음악으로 병마를 이겨낸 천재음악가 하스킬의 모차르트 헌정음반. 피아노 협주곡 19,20,27,2대의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소나타 KV330수록.
1960년 12월1일 파리의 샹델리제 극장의 ‘소나타의 밤’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자리가 모자라 보조의자까지 준비해야 할 정도로 열광적인 청중들이 맞이한다. 다음일정은 일주일 후 벨기에의 브뤼셀이었다. 하지만 그 공연은 성사되지 못했다. 브뤼셀역에 내려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는 뇌출혈로 쓰러진다. 눈이 내리던 다음날 아침 하스킬은 사망했다. 그녀가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다오” 였다.
클라라 하스킬(1895-1960)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유태인(Sephardic)이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빈(Wien) 외삼촌 집에서 자란 그녀는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으로6세 때 한번 들은 모차르트 소나타를 악보 없이 연주하였고, 심지어 악장 전체를 조바꿈해서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11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가브리엘 포레에게 작곡과 이론을, 알프레드 코르토에게는 피아노를 사사했다. 코르토는3개월을 가르친 후 “나는 더 이상 가르쳐줄 것이 없다” 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4세의 하스킬은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아름다운 미모의 천재 피아니스트’의 본격적인 연주활동은 시작된다. 외젠 이자이, 제오르제 에네스쿠, 파블로 카잘스 등 당대의 최고의 연주가들과 협연했으며, 특히 포레, 부조니, 모리스 라벨, 찰리 채플린 등은 그녀의 열렬한 ‘찬미자’ 였다.
호사다마인가! 창창한 앞날이 보장되는 듯 했던 소녀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1913년, 18세의 하스킬을 평생 고달프게 했던 육체의 병마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척추 측만증(scoliosis)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무려4년 동안이나 온 몸에 깁스한 채로 투병하게 된다. 이 병의 후유증으로 소녀의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무대 공포증에 빠진 보기 흉한 꼽추가 되어 버렸다. 1921년, 병마와 싸워 일어난 여인은, 마침내 모차르트를 연주하며 무대에 다시 오른다. 12년 만에 선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담아낸 연주’, ‘모차르트의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1924년부터는 캐나다, 미국, 영국 등에서 연주했고, 파리에선 음악의 파트론으로 알려진 폴리냑 공작 부인의 재정적인 후원을 받으며 활동한다. 그러나 파리의 안락한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유태인이었던 하스킬은2차 대전이 터지면서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마르세유로, 스위스로 떠돌게 된다. 불구의 하스킬은 전쟁의 공포와 연약한 몸 때문인지 갑작스런 시력저하와 두통에 시달린다. 시신경에 생긴 종양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숨어 지내야 했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에야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두통과 실명에서 벗어나면서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긴다.
하스킬은1949년 스위스로 망명하여,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그녀의 ‘마지막 음악의 불꽃’을 태운다. 이 시기에 함께한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세르주 첼리비다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피에르 몽퇴, 페렌츠 프리차이,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앙드레 클뤼탕스, 이고르 마르케비치 등이며, 유럽과 미국의 각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그녀를 섭외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린다. 하스킬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는 역시 모차르트이다. 그녀의 공연에는 항상 모차르트가 빠지지 않았으며, 녹음 또한 모차르트를 가장 많이 했다. 특히 아루트르 그루미오와 콤비를 이룬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유명하며, 프리차이가 RIAS 심포니(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의 전신)를 지휘한 ‘피아노 협주곡20번’은 오케스트라의 비장미(悲壯美)와 하스킬의 초연한 피아니즘이 어울려 불멸의 명반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