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is Bacalov (루이스 바칼로프)

영혼을 불어 넣은 듯, 시정이 듬뿍 담긴 아름다운 음률의 마법사 영화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 그의 독보적이고도 아름다운 음악 세계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와 이태리 섬마을의 우편 배달부와의 아름다운 우정담을 그린 <일 포스티노(IL POSTINO)>가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후 우리는 아주 보석같은 이름을 가슴 한켠에 새겨넣게 되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인간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채색한 음악으로 우리의 잠들어 있던 영혼을 일깨워 시정을 듬뿍 불어넣어주었던 영화음악의 주인공, 바로 <일 포스티노>의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Luis Bacalov)의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그가 <일 포스티노>로 1996년 아카데미 드라마 부문 음악상(Best Original Dramatic Score)을 수상하면서 느닷없이 회자된 이름이었지만, 당시 그는 너무나 뒤늦게 그의 이름을 인지하게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탓해야 할 만큼 자국내 이태리에서는 누구나 존경하는 최고의 영화음악가이자,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로까지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여기에, 예순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까지 낯선 이태리 영화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일흔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발표했으며, <일 포스티노>는 그의 두번째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작품- 그의 아카데미 첫 노미네이트는 64년도 란 작품이었다. - 이고, 이태리의 전설적인 아트록 그룹 뉴트롤스(NEWTROLLS)의 앨범 - 이 앨범의 1집에는, 뉴트롤스를 우리나라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 "아다지오(ADAGIO)"가 담겨있다. - 을 기획, 제작했으며, 수많은 이태리의 불멸의 국민가수 지아니 모란디(Gianni Morandi)와, 세르지오 엔드리고(Sergio Endrigo), 디노(Dino), 리타 파보네(Rita Pavone)의 곡을 작곡하고 편곡하기도 했다는 그의 강력을 알고 난다면 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오히려 신기한 생각이 들것이다. 이처럼 이태리 대중음악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각광을 받고 있는 루이스 바칼로프(본명은Luis Enriquez Bacalov)는 1938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콘서트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인생을 자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가 아닌 로마에서, 1958년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미션(Mission)>,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등의 영화음악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화음악의 대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어시스턴트로부터였다고 한다. 원래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가난했던 젊은 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시작한 팝음악이 그가 팝 음악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뜻밖에도 영화음악가가 아닌 이태리 팝음악의 편곡자로서였다. 영화음악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던 그에게 함께 작업하던 그 영화의 작곡가가 우연히 편곡을 부탁했고, 이 곡이 영화의 성공과 함께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RCA 레이블 등, 무수히 많은 레이블로부터 편곡 제의를 받으면서 편곡자로서 먼저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작곡과 편곡을 겸하며 Luis Enriquez & His Electric Men이라는 밴드를 조직,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지아니 모란디(Gianni Morandi), 세르지오 엔드리고와 같은 수많은 이태리 팝 가수들의 곡을 작곡하고 편곡했다. 영화음악은, 61년 라는 영화에 영화음악을 하면서 시작했는데, 1964년에는 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후에는 서부극 <장고(DJANGO)>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여인들의 도시(LA CITTA DELLE DONNE)> 같은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하면서 엔니오 모리꼬네와 쌍벽을 이루는 작곡가로 전면에 부각하게 된다. 이후 40여년에 걸친 긴 세월동안 그는 70여편이 넘는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지만 대부분이 우리가 잘 모르는 이태리 영화인 탓에 우리들이 기억하는 멜로디 정도로는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의 대명사라 일컬어지는 <쟝고(DJANGO)>의 테마곡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런 그가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다름아닌 <일 포스티노(IL POSTINO)>가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96년도 아카데미 드라마 부문 음악상을 받으면서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어시스턴트로 출발했다는 그의 이력 탓인지 늘상 모리꼬네와 비교를 당했던 그는 이 영화로 5번의 노미네이트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수상하지 못한 엔니오 모리꼬네보다 먼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일 포스티노>의 영화음악은 제일 먼저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의뢰가 들어갔으나 그가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자 뒤늦게 그가 작업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이 영화 <일 포스티노>는 루이스 바칼로프의 인생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다. 무수히 많은 영화음악 제의를 거절하기에 바쁠 정도로 그는 일약 국제적인 대스타가 된 것이다. 58년, 20살의 나이로 음악인생을 시작한 이래 약 40여년간 줄기차게 이어져온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아카데미 수상으로 인해 다시 재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 바칼로프의 대표작 루이스 바칼로프의 작품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40여년 넘게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온 그의 인생을 대변하듯, 영화음악만도 70여편 이상, 여기에 작곡가 편곡가로 활동한 작품수까지 합한다면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명반의 팡테옹에 올라있는, 전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그의 최고의 작품들을 만나보자. 1. <섬머타임 킬러(THE SUMMERTIME KILLER)> <섬머타임 킬러(원제 THE SUMMERTIME KILLER)>가 우리나라에 처음 공개된 해는 1970년대 초. 지금으로부터 약 27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개봉 당시, 청춘 남녀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화제를 만발하게 했던 이 영화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과의 사랑이라는 일면 상투적인 이야기와, 허술한 극전개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마드리드, 리스본을 오가는 로드 무비의 매력적인 형식과, 자유를 향한 오토바이의 질주,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 남자와 운명적 사랑을 나누게 되는 비련의 여주인공 타냐역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와, 아버지의 복수와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킬러 레이 카스토(Ray Castor) 역을 맡은 크리스 미첨의 눈부신 매력 덕분에 흥행면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매력 외에도 이 영화의 매력은 또 있는데 바로 장면장면 달콤하게 젖어들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루이스 바칼로프다. 영화를 보고 나면 두 주인공의 모습과 음악만 생각났을 정도라고 하니 이 영화의 흥행이 올리비아 핫세와 크리스 미첨의 멋진 모습 외에, 이를 적절하게 뒷받침해준 바칼로프의 음악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부터, 찰랑이는 금발머리와 까만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고독한 킬러 크리스 미첨이 바닷가에서 행복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위로 흐르면서 영화의 초반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RUN AND RUN"과, 아버지를 죽이려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올리비아 핫세의 안타까운 운명을 상징하는 듯, 슬프고도 아련하게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LIKE A PLAY"는 두 남녀 주인공의 심리와 분위기를 대변하면서 영화 속을 꿈결같이 수놓았던 이 사운드트랙의 백미이다. 이 두 곡 외에도 바칼로프의 또 다른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피디한 사운드와 서정적인 음률은 이 사운드트랙 곳곳에서 진가를 발휘하다. 이 음반은 <일 포스티노>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음률로 만인을 감동시켰던 루이스 바칼로프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음반이며, 1970년대 한반도에서 왜 그토록 많은 젊은 청춘들이 이 영화에 열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열쇠가 되는 음반이다. 특히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오는 11월 중순경, 영화개봉 27년 만에 세계에서 최초로 CD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발매될 예정이다. 영화가 인기를 끌 무렵 우리나라에는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이 아닌 불법 복제된 LP만 구할 수 있었기에 소음과 잡음에도 만족해야만 했던 이 음반의 팬들에게는 그래서 한층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일 포스티노(IL POSTINO)> 그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아카데미상으로까지 이어진 <일 포스티노>일 것이다. 페루의 국보, 저항시인이자 민중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와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는 순박하고 착한 우편 배달부와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아름답고 투명한 지중해의 풍광과 함께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네루다의 시, 그리고 바칼로프 특유의 서정적이고 이국적인 음악이 한데 어울어져 마치 한 편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수작이다. 음악상을 비롯 최우수 외국어 영화 부문 등 1996년도 아카데미에서 무려 5개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인 마이클 랫포드(Michael Radford)는 작곡가들에게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감독으로, 처음에는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작곡을 의뢰할 생각이었으나 그가 너무 바쁜 관계로 거절하자, 무수히 많은 작곡가를 심사한 끝에 결국 베를린 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바칼로프에게 빨리 작업을 마쳐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의 음악에 대한 신념이 대단한 감독이었지만, 탱고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써서 스코어를 웅장하게 하기 보다는 반도네온을 이용하자는 바칼로프의 의견에 만족하여 전 재량권을 맡겼다고 한다. 감독의 예감은 적중하여, 5개부문 노미네이트된 가운데 정작 상이 돌아간 것은 바로 바칼로프의 음악이 되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아름다운 여인과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음악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5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수상하는 영광을 안지 못한 불운한 작곡가로 남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3. 영화음악가 루이스 바칼로프와 이태리의 유명한 음반제작자 바로도티의 제안으로 기획된, 록과 클래식의 융합이라는 대대적인 실험을 감행한 새로운 개념의 컨셉트 앨범. 이 음반 역시 <운명의 삶(LA VITTIMA DESSIGNATA)>이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 음반이다. 1966년, 기타에 빗토리오 데 스칼지, 기타 겸 보컬에 니고 디 팔로, 타악기에 지아니 벨레노, 베이스에 조르지오 아다모, 키보드에 마오로 치아루기 5명이 처음 그룹을 결성한 이래 발표된 뉴트롤스 작품 가운데 그들의 대표적 음반이다. 71년 발표된 로 아트록의 역사는 오로지 뉴트롤스를 중심에 놓고 다시 씌여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이 앨범이 대중음악사상 갖는 의미는 거의 절대적이다. 록과 클래식의 융합이라는 대대적인 실험정신은 바로, 클래식이라는 장대한 형식 안에 당시 이태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던 불안한 사회적 정황을 표현한 심오한 내용을 접합시킨 것으로, 특히 햄릿의 유명한 독백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실로 허무하기 그지 없는 잿빛 보컬에 깔리는 "아다지오(ADAGIO)"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곡이 되었다. 이어 75년에 발표된 역시 세계 음악사에 이정표가 되는 명반으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섬세한 기운을 생동감 있게 표출한 보컬은 우리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두 앨범 모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미국 중심의 음반 정보에 식상한 애호가들이 아트록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장르에 서서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그 촉매가 되었던 프로그래시브 음반이 국내에 하나둘 소개되던 무렵, 밤 하늘의 예광탄처럼 음악 애호가들의 가슴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