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음반] 재즈계의 아이돌에서 절망과 고독의 예술가로 … 쳇 베이커의 시작과 끝 -스포츠동아- 2021-01-08

     
     
    그가 트럼펫을 불고 노래를 읊조리면 순식간에 나른한 우울감이 물잔 속의 잉
    크 한 방울처럼 번져나갔다.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쿨 재즈의 아이콘. 쳇 베이커의 시작과 끝을 담은 LP와
    CD 4종이 출시됐다.

    누가 더 숨 막히도록 연주를 잘하는지, 누가 더 빼어나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천하쟁패를 위해 격돌하는 듯한 재즈라는 장르에서도
    ‘아이돌 스타’가 존재한다면 그 중심에는 단연 ‘쳇 베이커’라는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렸던 쳇 베이커. 소년 같은 보이스, 어딘지 모르게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젊은 날의 그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한창 인기였던
    1950년 대 재즈계에서 단연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트럼펫도 독학으로 시작했던 그는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와 비교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쳇 베이커만의 느슨하면서도 울적한 트럼
    펫 소리는 오직 그만이 연주할 수 있는 트레이드마크이다.

    트럼펫 연주와 더불어 어눌한 듯 중성적인 목소리가 큰 매력이었던 그는 1954
    년 ‘Chet Baker Sings’를 발매해 높은 앨범 판매량을 보이는 한편 여성 팬들로
    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리즈시절’을 만들어 냈다.

    이번에 새롭게 발매된 LP와 CD는 그의 전성기와 최고의 걸작을 고스란히 담아
    낸 음반이다.
    전성기 시절의 노래와 연주를 담은 Chet Baker ¤ IGORT (3LP Box Set)에는 쳇
    베이커를 대표하는 ‘My Funny Valentine’, ‘I Fall In Love Too Easily’, ‘But Not
    For Me’ 등 38곡과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이고르트가 쳇 베이커 삶을 그린 22
    쪽의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젊은 쳇 베이커가 긴 전성기를 누리지 못한 데에는 백인이 연주하는 재즈에 대
    한 차별적인 시각도 한몫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약이었다.
     
     
    쳇 베이커는 마약에 빠진 채 미국과 유럽 일대를 떠돌게 된다. 레코딩은 계속
    했지만 마약을 사기 위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의
    존재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쳇 베이커의 젊은 시절을 본 사람이라면 앨범 재킷 속의 쭈글쭈글한 늙은이가
    그라는 사실에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한때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며 많
    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그는 이 앨범을 끝내고 15일 후 투신자살하고
    만다.

    이 앨범은 1988년 마지막 콘서트 레코딩으로, 그가 평소 좋아하던 곡들로 채워
    져 있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소리는 이빨 사이로 새어나가는 느낌이 역력하다.
    원래 테크니션이 아니기는 했지만, 더 이상 그가 재즈를 연주할 수 없을 것이라
    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제외하고도 이 앨범은 절창 중의
    절창이다.

    젊은 시절의 쳇 베이커가 ‘MY FUNNY VALENTINE’을 꿈꾸듯이 낭만적으로 해
    석했다면, 이 앨범의 ‘MY FUNNY VALENTINE’은 오직 절망밖에 남은 것이 없는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고독한 예술가의 크로키. 쳇 베이커
    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382/000088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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