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 (에디뜨 삐아프)

노래(song)라는 뜻의 샹송은 프랑스의 대중음악을 지칭하며, 프랑스인들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주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한 편의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듯이, 가사가 이야기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은 것도 그 특색 중의 하나다. 때문에 샹송 가수는 단지 멜로디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의 내용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목소리가 아름답다든가 음악적으로 정확하다든가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곡을 어떻게 해석하여 개성있는 표현으로 듣는 이에게 전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2차 대전을 전후로 샹송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발전시킨 에디뜨 삐아프는 인생의 고뇌를 가장 잘 표현했던 최고의 샹송 가수로 꼽힌다.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본명은 에디뜨 조반나 가시옹(Edith Giovanna Gassion)이며 1915년 12월 15일 파리의 노동자 지역인 베르빌의 가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커스 곡예사였고 어머니는 도시 변두리의 가수였는데 자선병원으로 가는 도중 그녀를 낳았다고 한다. 이윽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도망가버려 그녀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세상물정을 알게된 무렵부터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 나가 구경꾼한테서 돈을 모으는 역을 하고, 15세부터는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니스’ 라는 카바레의 지배인 루이 르프레(Louis Leplee)가 그녀를 자기 가게에서 노래하게 했는데, 이때 그녀는 삐아프(파리지방의 은어로 ‘작은 참새’)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러나 반 년 후 르프레가 사망하자 그 혐의를 받은 피아프는 실의에 빠진다. 얼마 후 작곡가 레이몽 아소, 말그리트 모노 등의 격려로 재기하였고, <나의 병사님> 등을 부르고 성공을 거뒀다. 1940년 장 콕토가 그녀를 위해 쓴 <냉담한 미남>에 의해 배우로서도 눈을 떴다. 1944년 ‘물랭 루즈’에서 이브 몽탕을 알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46년 샹송의 벗을 내보냈다. 그후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으나, 그는 49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1950년 9월 20일 피아프는 그때까지 뤼시엔 부아에의 남편이었던 가수 자크 필스와 미국 뉴욕에서 결혼하였고 그 4년후에 이혼하였다. 1962년 21세 연하인 테오 사라포와 결혼, 그와 함께 올렝피아 극장에서 노래하였다. 그리고 63년 10월 11일 소화기 계통의 출혈이 원인으로 요양중이던 리비에라에서 파리의 자택으로 돌아간뒤 세상을 떠났으며, 그 충격으로 장 콕도도 뒤를 따랐다. 노래와 사랑에 산 위대한 여성이었다. 엄청난 재능과 진실한 표현! 1937년경에 프랑스의 한 제작사가 에디뜨 삐아프를 두고 이 슬로건을 사용했다. 그러나 에디뜨를 소개할 때, 단순한 이 슬로건 하나로 그녀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피아프는 초창기에 몽환적 멜로디에 현실적인 모습들을 많이 결부시키는 이미지로 비춰졌고, 자서전에서는 그녀의 어머니인 Line Marsa의 증언대로 피아쁘가 노래속의 여주인공적인 모습과 단순히 노래를 전하는 한 해석가, 그 둘 모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삐아프에 대한 진부한 표현들이 이미 수십년간 그녀의 전설과 사실을 왜곡시켜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음반을 통해서 그녀의 재능과 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실로 그녀의 대다수의 노래들이 그녀 삶 자체를 너무나 잘 대변하고 있고 어쩌면 무의식까지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