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e Haslam (애니 해슬럼)

그룹 르네상스의 보컬로 유명한 애니 해슬럼은 유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가수이자 코미디언이었고, 오빠는 60년대 중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매니저를 맡았던 록앤롤 가수였다. 어린 시절에는 패션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와 동네 선술집에서 메리 홉킨의 'Those Were the Days'를 부른 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가수로서의 길을 모색, 오페라 가수 Sybil Knight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1970년말 멜로디 메이커의 르네상스 새 보컬리스트 구인광고에 응했는데, 해슬램의 5 옥타브를 넘나드는 수정같은 소프라노 보이스는 당시뿐만 아니라 그후 다른 보컬리스트를 맞았던 르네상스 멤버들에겐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목소리로 각인되었던 것. 그 후 그녀는 16년동안 르네상스와 활동하며 (1973), (1975), (1977) 등 주옥 같은 10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77년에는 그녀의 첫 솔로 앨범 를 시작으로 , 등 94년까지 4장의 솔로 앨범을 더 발표했다. 1987년 르네상스가 해체되자 애니는 초기 밴드 멤버 가운데 키보드를 담당했던 ‘레이브 테사 (Rave Tesar)’와 드럼과 퍼커션을 담당했던 ‘조 골드버거 (Joe Goldberger)’는 1992년 가입한 키보드와 기타를 맡은 ‘데이비드 비글린(David Biglin)’과 함께 현재까지도 ‘애니’와 함께 연주를 하고 있다. 1992년 ‘애니’는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곡을 쓰기 시작하고 데모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유방암 선고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좌절하지 않았다. 투병시절 쓰여지고 녹음된 곡들은 연주 음악으로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로 힘든 시절을 견디는 근원이 되어주었다. 음악은 그녀의 치료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94년 4집 가 일본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애니’가 곡 작업에 참여한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그녀가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는 1995년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발매되었으며 이후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도 발매되었다. 그 즈음 “Turn of the Century”라는 곡으로 ‘예스(Yes)’ 헌정 음반에도 참여했는데 이 음반을 통해 ‘애니’는 ‘스티브 하웨(Steve Howe)’와 함께 앨범 작업을 하게 된다. ‘스티브’의 숨막히는 멜로딕한 스타일의 기타 연주와 ‘애니’의 5옥타브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보이스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함을 선사한다. 그 후 보스니아의 고아들에 대한 프로그램에 감동을 받은 ‘애니’는 미국의 TV뉴스매거진쇼에 전화를 하게 되고, 뉴욕에서 사라예보의 불행한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조직한 ‘애니’를 위한 연대가 결성되었다. 그 콘서트는 후에 ‘20세기 기타 매거진’의 도움으로 구성되어 녹음되기에 이른다. 어빙 플라자에서 열렸던 그 날의 콘서트는 ‘Justin Hayward’, ‘Gary Brooker’, ‘Roy Wood’, ‘Cheap Trick’, ‘Steve Howe’, ‘Phoebe Snow’, ‘ Steve Holley’, ‘Ian McDonald’, ‘Tony Visconti’, ‘Joy Askew’, ‘Maggie Ryder’, ‘Ian Lloyd’, ‘David Biglin’, ‘Al Franken’의 참여와 함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98년에는 97년 브라질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라이브 음반 를 발표해 투병속에서도 여전한 음악에의 열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변신을 꾀하는 등 꾸준히 스스로의 음악세계를 넓혀나간 그녀는, 전세계를 돌며 라이브를 통해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과 끊임없는 만남을 가지고 있다.